“진영이는 장가를 집 근처로 가겠네.” 돌아가신 아버지가 언젠가 나에게 했던 말이 젓가락을 잡을 때마다 귓가를 맴돈다. 젓가락을 짧게 잡고 밥을 먹으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설화 같은 이야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서식지 근처의 인연을 만나 결혼했다.

생전에 아버지는 내 행동에 가타부타 별말은 하지 않으셨다. 다만 딱 한 가지 예외는 젓가락질이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때 젓가락질을 못하면 채신없어 보인다며 늘 바로잡아주었다. 그 덕에 제대로 된 젓가락질로 밥을 먹는다.

윤희랑 짜장면을 먹을 때였다. 그날따라 유독 윤희의 젓가락질이 눈에 들어왔다. 묘하게 ‘X자’ 형태로 젓가락을 쥐고는 면을 집는 게 아니라 돌돌 말아서 먹고 있었다. “김윤~ 젓가락질 그렇게 하면 편해? 아빠처럼 이렇게 해봐.”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도 짜장면 먹는 데 지장 없어.” 하긴 DJ DOC도 윤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라 항변했었다.

“지장은 없지만 폼은 좀 빠지잖아.” “그런가? 이렇게 쥐고 하는 게 편한데. 나 힘들어서 못하겠어.” “그래, 하지 마.” 젓가락질이라는 게 한 번에 되는 게 아닌지라 그냥 두었다. 그 이후로 밥때가 되면 “젓가락 이렇게 잡는 거야?” 하고 질문을 던지더니 일주일쯤 지나서는 그럭저럭 올바르게 젓가락질을 한다. “어때? 젓가락질 그렇게 하니까 편하지?” “아니~ 손가락 아프고 힘들어.”

ⓒ김진영 제공
며칠 지난 후 밥상머리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윤희가 갑자기 고수의 젓가락질을 보여주었다. 그 어렵다는, 젓가락으로 콩자반 집기에 성공하고는 헤헤거린다. 겉으로 투덜거리면서도 학교 급식 시간에 맹렬히 연습한 모양이다. 이런 딸아이가 예쁘지 않을 리 있으랴. 짜장면을 먹으면서 잔소리할 일도 사라졌다.

그렇다. 오늘의 주제는 짜장면이다. 동네에 윤희가 무척 좋아하는 짜장면집이 있었다. 이름난 노포가 아니라 평범한 중국집이다. 메뉴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정도가 전부이고 배달은 하지 않았다. 짜장면 하나를 만들 때도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는 원칙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이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집에서 짜장을 만들었다. 내 레시피의 핵심은 돼지고기를 볶을 때 나온 기름에 춘장을 볶는 것이다. 양파나 감자는 거의 안 넣는다. 윤희가 먹지도 않을 재료를 넣어봐야 먹을 때 골라내기 바쁘다. 고기는 앞서 카레 편에서 이야기했듯이 항정살을 사용한다. 적당한 기름 맛과 살 맛이 있어서 항정살만큼 좋은 부위가 없다. 중식 고수들도 항정살을 즐겨 쓴다고 한다.

집에서 만든 짜장을 갓 지은 밥에 얹어줬는데, 고개를 젓는다. 무조건 짜장은 밥이 아니라 면이란다. 결국 실패했다. 얼마 후 집 주변에 새로 생긴 식자재 마트에 가서 냉동 중화면을 사왔다. 면을 직접 뽑지 않는 중국음식점 대다수가 이 냉동면을 쓴다. 이제 짜장만 제대로 볶으면 윤희가 좋아할 듯싶었다.

기름과 설탕은 맛있는 향을 낸다

다시 항정살로 기름을 내고 춘장을 볶았다. 이번엔 캐러멜 향이 나는 비정제 설탕으로 맛을 더했다. 사람은 열 받으면 뚜껑 열리지만, 기름과 설탕은 맛있는 향을 낸다. 먹어보니 괜찮았다. 자신 있게 윤희를 불렀다.

“김윤, 짜장 먹자.” “흐흐 일단 모양은 좋네.” 젓가락으로 쓱쓱 비벼 한입 먹더니만 한마디 한다. “그런데 그 집 왜 없어졌을까?” 내가 만들어준 짜장면이 전에 먹던 동네 짜장면집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미안한지 한마디 건넨다. “그래도 맛있어. 배달 오는 짜장면보다는 몇 배 맛있어. 근데 그 집 짜장면은 계속 생각나네.” 그러더니 결정타 한 방. “아빠, 다음에는 탕수육도 만들어봐. 짜장면은 탕수육과 먹어야 제맛이지~.”


※ 이번 호로 ‘아빠가 차려주는 밥상’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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