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이렇게 싱거워. 아무 맛도 없네.” 두부를 소금에 찍어 먹던 윤희가 툭 볼멘소리를 던진다. 두부 브랜드가 바뀐 것을 단박에 눈치 챘다. 윤희는 두부나 구운 만두나 모두 소금에 찍어 먹는다. 어묵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거지, 튀긴 것은 소금에 찍어 먹는 게 제일이라 생각한다. 군만두를 만들면 내가 먹을 양념간장과 윤희가 찍어 먹을 소금 종지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간장이 맛있다고 꾀어도 늘 도리질이다. 일관성이 있어 좋긴 한데 귀찮다. 아무튼 이날의 문제는 두부였다.

14년 전이었다. 식품박람회에 가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두부를 시식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두부 조각 안에 고소함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먹은 두부는 무엇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의 맛이었다. 며칠 뒤에 이 두부 회사와 바로 계약했다. 그 당시 두부 한 모에 2000원, 내가 맛본 두부는 4500원이었다. 동료들은 가격 때문에 안 팔릴 거라 판단했지만 나는 맛 때문에 팔릴 거라고 봤다. 그 생각은 맞았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이다.

ⓒ김진영 제공
일전에 대기업 두부 공장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자랑한 것은 두부 맛이 아니었다. ‘수율’이다. 콩 한쪽에서 두부를 얼마만큼 뽑아내느냐가 연구개발의 목표였다. 문제는 이런 두부에는 수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에서 판매하는 두부를 부치면 수분이 빠져나와 기름이 많이 튄다. “퉤, 퉤” 기름 튀는 소리가 나한테 침 뱉는 거 같아 기분까지 나쁘다. 물 반 콩 반이라 할 정도로 두부가 무르다. 기름에 튀긴 것은 다 맛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맛없는 것은 튀겨도 맛이 없다. 반면 콩 함량이 높은 두부는 팬에 부칠 때 기름이 덜 튄다. 두부가 조용히 기름을 흡수하면서 노릇노릇 맛나게 구워진다.

두부 맛은 콩이 결정한다. 전주 함씨네 두부는 정읍, 김제 등 인근 농가에서 재배한 개량 토종 콩만을 사용해 만든다. 맛에 중점을 두었다. 좋은 콩으로 만든 두부는 고소함에 구수함이 더해진 멋진 맛을 낸다. 이런 두부만 먹어왔던 윤희는 맛의 기준이 다른 아이보다 높다. 슈퍼에서 산 일반 두부를 부쳐주면 단박에 알아챈다.

콩 함량이 높은 두부가 고소하고 구수하다

슈퍼에서 사온 두부를 어찌할까 하다 냉장고에 있는 버크셔K 다짐육이 생각났다. 버크셔K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흑돼지 브랜드다. 두부를 꽉 짜서 물기를 뺀 다음 다짐육과 섞었다. 부추와 쪽파도 아주 잘게 썰어넣었다. 크게 썰면 윤희가 귀신같이 알아챈다. 양념은 참기름, 다진 마늘, 소금, 그리고 설탕 조금.

반죽하고 보니 달걀옷을 입히면 동그랑땡이 될 것 같고, 납작하게 사각형으로 구우면 광주 송정리식 떡갈비가 될 것 같다. 만두피로 감싸면 그럴싸한 만두가 될 듯싶었다. 동그랑땡이든 떡갈비든 두부와 다짐육, 그리고 약간의 채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여기에 간을 해서 10분 정도 치대는 시간이 귀찮을 뿐이다.

“동그랑땡, 떡갈비, 만두 셋 중에 골라.” “아빠, 셋 다~.” 어떤 답이 돌아올지 뻔히 알면서 고르라고 한 내가 멍청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손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잡았다. 콩과 고기의 단백질이 기름에 익는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이런 메인 요리가 있으면 다른 찬은 없어도 된다. 잘 익은 김장김치만 있어도 좋다. 아니면 동그랑땡을 부친 기름에 김치를 살짝 볶아도 훌륭한 반찬이 탄생한다. 반죽을 넉넉하게 한 덕에 남은 반죽은 완자를 만들어 김치찌개에 넣을 생각이다. ‘완자 김치찌개’다. 장담하건대 이 김치찌개, 별미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